얼쑤  2009/07/28  
오징어 한 마리가 물가에 놀다
우연히 백로와 마주쳤다네
희기로는 한 조각 눈결이요
맑은 물과 같이 빛나는구나
오징어 머릴 들어 백로에게 말하기를
자네 뜻 무엇인지 알 수가 없네
기왕에 고기 잡아 먹으려면서
깨끗한 절개 지켜 무얼 하려나
내 뱃속엔 언제나 먹물이 있어
뿜어대면 주위가 캄캄해지지
고기 떼들 눈이 흐려 헤매다니고
꼬리치며 가려 해도 갈 곳을 몰라
입을 벌려 삼켜도 알지 못하니
나는 늘 배부르고 고기는 늘 속는다네
자네 날갠 깨끗하고 깃도 유별나
간 곳마다 고운 모습 물에 비쳐서
고기 떼들 먼 데서도 다 도망가네
진종일 서 있은들 무얼 하겠나
아픈 다리 주린 배 항상 괴롭지
까마귀 찾아가 날개 빌려서
적당히 검게 하여 편하게 살지
그래야 고기 많이 잡을 수 있어
여편네 먹이고 새끼 먹이지
백로가 이를 듣고 대답하기를
자네 말도 일리가 있는 듯하나
내게 주신 하늘 은혜 결백함이고
스스로 믿기에도 결백함이라
한 치조차 못 되는 밥통 채우려
얼굴과 모양을 바꾸겠는가
오면 먹고 달아나면 쫒지 않으리
꿋꿋이 서 천명대로 살 뿐이네
오징어 화를 내고 먹물을 내뿜으며
어리석다 백로여, 굶어죽어 마땅하리

정약용 <오징어와 백로>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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